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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탐방기

5박6일 간의 탐방기
박인호 2018-11-23 16:04:44 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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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2회 일본 속의 한민족사 탐방 보고서

 

 교사로서 나름의 고집과 열정을 가지고 매사에 열심히 부딪쳤던 30대를 지나, 두 아들의 어린 시절을 추억이 깃든 시간으로 만들어 주기 위해 노력했던 40대, 중견교사로서의 역할을 감당하며 바쁘게 지낸 시간들을 되돌아보려 하니 벌써 오십대 중반이 되어버렸다.

 1990년대 초 신임 교사시절, 이미 고인이 되신 역사 선생님께서 세토 내해를 지나는 배 위에서 피우던 담배 맛이 그렇게 좋았다는 말로부터 시작된 ‘일본 속의 한민족사 탐방’ 이야기가 그때만 해도 나에게는 그저 남의 일이었다. 여러 차례 공문을 받았지만 별 관심을 갖지 않았다. 40대 후반이 되어서야 이 연수가 눈에 들어왔고 기회가 된다면 꼭 한번 가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연수대상자 선정을 위한 추첨에서 두 번의 고배를 마시고, 다시 추천으로 도전! 그러나 마감시한에 쫓겨 성급하게 형식만 갖추어 제출한 첫 시도는 허무하게 막을 내리고, 추천이 안 된 것은 당연한 것이었지만 내가 왜 그렇게 조급했을까 생각하며 부끄러움에 후회하는 시간이 꽤 길어졌던 기억이 있다.

 이후에도 늘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도전했지만 매번 부족했고, 그 때마다 이젠 내려놓아야지 하면서도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게다가 지난 41회 추천 공문이 늦게 전달되어 허무하게 기회를 날려버리고서는 완전 포기 상태가 되었다. 그런데 한 가닥 남은 간절함이 통했는지,  이번 42회 탐방이 예년에 비해 조금 앞당겨졌고 결국 연령 제한에 단 하루를 남기고 마지막 기회가 한 번 더 주어지게 되었다. 3전 4기 끝에 이번 탐방 연수를 함께 하는 선물 같은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사람들은 대게 뚜렷한 목적 없이 여행길을 나선다. 여행은 그 자체만으로도 사람들에게 행복감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은 분명한 주제와 목적을 가지고 떠나는 것이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를 잡아가는 것 같다. 멋진 모습을 사진에 담기 위해, 또는 맛있는 것을 먹기 위해, 그곳이 아니면 체험할 수 없는 그 무언가가 있기에 발길을 내딛는다.

 이 탐방 연수는 “역사는 유적과 유물을 낳고, 유적과 유물은 역사를 증언 한다”는 명제와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은 미래를 반영하는 거울”이라는 신념으로 교사들에게 한일 고대사를 제대로 알게 하고 이를 학생들에게 정확하게 전달함으로써 바른 역사관을 함양하고 그를 바탕으로 나아가 세계 속에 당당한 한민족의 구성원으로 우뚝 설 수 있는 계기로 삼기 위해 기획되었다고 들었다. 30년 이상을 이어져 오면서도 매번 평범하지 않았고, 축적된 노하우를 통하여 그 짜임새가 진일보 해왔기에 그 신념과 가치가 식지 않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 여행은 자신의 삶을 사랑하기에 떠나는 것이라고 했던가?

 깊어가는 가을, 내 삶의 한구석을 채워줄 여정에 대한 기대를 가지게 되었다.

 

11월 4일 탐방의 첫째 날 - 오리엔테이션

 오전 10시 서울외곽순환도로를 통해 인천공항으로 직행하는 리무진 버스에 올랐다. 오후에 인천공항청사에서 이번 탐방을 위한 오리엔테이션 및 학술강연에 참석해야하기 때문이다. 전국 각지의 250여명의 선생님들이 인천 공항 청사에 모여 탐방에 도움이 될 만한 약 5시간의 강의를 들었다. 나는 역사 전공자는 아니었지만 열심히 들었다. 강의 내용이 어렵지 않았고 “아는 만큼 보인다” 는 말을 늘 마음 속에 새기고 있던 터라 더 집중해서 들으려고 노력했다

 다음날 아침 일찍 비행기를 타야 하기에 공항 근처에 있는 호텔에 숙박하게 되었다. 25년 만에 대학 후배도 만났다. 나보다 훨씬 늦게 숙소에 도착한 룸메이트는 바로 옆 학교에 근무하는 선생님이어서 첫 만남의 어색함은 덜했다.

 어떤 이가 “여행을 통해 우리는 길을 잘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길을 묻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라고 했다는데, 이번 탐방이 그런 여정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11월 5일 탐방의 둘째 날 - 다자이후, 후나야마 고분

 6시도 채 되기 전 이른 아침, 짐을 챙겨 들고 공항 행 버스에 올랐다. 아직 어둑한 새벽에 쌀쌀한 바람까지 뭔가 모를 긴장과 설렘으로 공항에 도착하였다. 출국 수속 후 간단한 아침식사를 마치고 이스타 항공 641편에 몸을 실었다. 일본의 가장 서쪽 섬 큐슈의 후쿠오카 공항까지 비행시간은 약 1시간 10분. 김포에서 제주 가는 것보다 조금 더 걸리는 정도였다. 

 후쿠오카 공항에 도착한 후 준비된 버스에 탑승하여 백제와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는 다자이후 유적지와 구마모토로 가는 길목에 있는 후나야마 고분을 차례로 둘러보았다. 백제의 우수한 문화가 밑거름이 되었음을 확신할 수 있는 현장이었다. 탐방지를 돌 때마다 빠짐없이 이어지는 교수님들의 강의가 탐방에 큰 도움이 되었다.

 숙소가 있는 나가사키 쪽으로 이동하는 버스에서 가진 자기소개 시간. 뭘 그런 걸 하냐면서도 자기 차례가 되자 모두 나와 자기를 재미있게 소개하신다. 어둠이 내리기 시작할 무렵 내차례가 되었을 때, 나를 보내놓고 두 아들과 함께 고생할 아내에게 미안하다는 이야기를 꺼냈다가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여선생님들로부터 야유를 받았다. 가장 나이가 어린 선생님은 채 서른 살이 안 되었고, 우여곡절 끝에 참가하게 된 나는 최연장자인 듯 했다.

 일본식 정식으로 저녁식사를 마친 일행은 나가사키 하우스텐보스 내에 있는 워터마크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11월 6일 탐방 세째 날 - 아리타 이삼평 도예지, 나고야성터, 아카마 신궁, 청일강화기념관

 간단하게 호텔에서 조식을 마친 후 오전 탐방지인 아리타의 이삼평 도예지와 불행했던 역사의 현장인 사가현 가라츠시의 나고야 성터를 찾았다. 모두 소실되어 그 흔적만이 남아있는 조선 침략의 전진기지였던 곳에 서있는 감회가 남달랐다

 점심식사 후 부지런히 이동하여 찾은 곳은 일본과 한국을 교류하는 중요한 창구로 조선통신사의 숙소였던 시모노세키의 아카마 신궁과 청일전쟁 후 조선의 운명을 가른 조약이 체결된 청일강화기념관이었다. 주변 열강의 이해관계의 틈바구니에서 나라의 주권을 잃을 수밖에 없었던 약소국의 설움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듯 했다. 이틀 동안 큐슈와 시모노세키의 유적을 둘러보며 그동안 자세히 알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다.

 일몰을 보며 신모지항으로 이동한 일행은 옛 조선통신사들의 항로를 따라 세토 내해의 잔잔한 바닷길을 밤을 꼬박 새워 달리게 될 동문 페리호에 승선했다.

 선실 안에 마련된 잠자리는 크게 불편하지는 않았지만 덩치가 큰 내게는 다소 좁은 공간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 갑판 위에서 올려다 본 하늘에는 수많은 별들이 쏟아질 듯 떠있었고 잔잔한 바다를 가르며 힘차게 나아가는 거대한 배는 거침이 없었다.

 

 11월 7일 탐방 네째 날- 나라 도다이지, 호류지, 아스카테라, 다카마츠 고분

 시속 20노트의 속도로 밤새 달린 페리는 아카시대교 위로 떠오르는 일출을 뒤로 하고 오사카에 도착했다. 선내에서 조식을 마치고 하선 후 곧바로 나라로 이동하여 세계 최대의 목조 건물이면서 세계에서 가장 큰 청동대불을 보유하고 있는 도다이지(동대사)를 찾았다. 이 절 창건의 대역사를 추진하고 완성하는 데는 한반도에서 건너간 사람들의 도움이 절대적이었다고 한다. 이어 중국과 한반도의 불교 건축과 예술이 일본에 건너가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동아시아 미술의 보고’로도 불리는 호류지(법륭사)를 방문하였다. 사라져버린 백제 목조 건축의 실상을 알기 위해서 반드시 호류지를 봐야 한다고 들었다. 

 이젠 제법 익숙해진 일본식 정식으로 점심 식사를 마친 후, 서둘러 아스카로 이동, 백제왕흥사를 모델로 한 아스카테라, 다카마츠 고분 등을 둘러보는 것으로 4일째의 일정이 끝이 났다

 오사카 시내로 이동하여 저녁식사를 하고 숙소에 도착한 것은 7시경. 숙소가 예상했던 것도 보다 훨씬 고급스럽고 좋았다 특히 욕실이 두 개인 것이 인상 깊었다.

 오사카에서 유학하고 있다가 연락이 닿아 호텔로 찾아온 후배의 제자와 함께 한 오사카 시내 선술집에서 기억은 또 다른 추억이 될 듯하다

 

 11월 8일 탐방 다섯째 날 - 교토 니조성, 아라야시마, 고류지

 전날 밤 늦게 호텔로 돌아와 아침을 거르려 했으나 5호차 가이드가 방문을 두드려 나를 정색하며 찾았다. 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는 줄 알고 서둘러 식당으로 내려갔는데, 이번 탐방 기간 중 생일을 맞은 나를 식당으로 불러내기 위해 어색한 연기를 했던 것이었다.

 엉겁결에 생일 축하를 받은, 나를 포함한 4명의 선생님들은 많은 일행들로 부터 아낌없는 축하를 받았다. 매우 쑥스러웠지만 한편 이렇게 많은 사람들로부터 생일 축하를 받아 본 적이 처음이라 감동적이었고 또 오래도록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을 듯 싶다.

 미세먼지에 비까지 내렸다는 서울과 달리 구름 한점 없는 맑은 날씨에 교토로 이동한 일행은 신라의 숨결이 살아있는 고류지(광륭사)에 도착했다. 그곳은 그들의 자부심을 대표하는 일본 국보 1호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 보관되어 있는 곳이다. 우리나라 국보 83호인 신라의 금동미륵보살반가상을 쏙 빼닮았다. 일본 학생이 우연찮게 불상의 손가락을 부러뜨리는 바람에 그 재료가 우리나라에서만 자라는 적송이었음이 밝혀져 화재가 되었는데, 어느 것이 먼저 만들어졌느냐에 대해서는 아직 논란의 여지가 남아있다고 한다. 이어진 아라시야마 대나무 숲길. 곧게 뻗은 대나무들이 울창한 산책로가 인상 깊었다. 산책의 말미에 만난 말괄량이 일본 여중생들, ‘트와이스’ 라는 아이돌 그룹을 좋아하는 그들에게 한일 간의 붉어진 위안부, 강제 징용, 독도 문제 등은 전혀 관심사가 아니었다. 한국에서 온 우리에게 매우 호의적이고 친절했다.

 점심 식사 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천왕을 방문하기 위해 교토에 올 때 숙소로 쓰려고 지은 니조성을 찾았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유적이지만 그 지붕양식은 우리나라에서 전해진 양식이라고 한다. 독특한 것은 외부의 침입자를 막기 위해, 밟으면 새소리가 나도록 설계된 마루였는데 걸을 때마다 새소리가 들리는 것은 여전했다. 엄청난 권력을 가졌지만 늘 불안하게 살아야했던 무사들의 애환을 짐작케 하였다.

 저녁은 오사카 시내 자유식. 오사카의 명소 도톤보리에 하차한 일행은 어제 시간을 함께 해준 제자의 길 안내에 따라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은 골목의 자그마한 라멘집에서 매운 라면으로 저녁식사를 했다. 국물이 진하고 특히 면발이 쫄깃하고 맛이 있었다. 유명한 간판 글리코상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었다. 목요일 저녁이었는데도 거리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 없이 가득했다.

 

 11월 9일 탐방 여섯째 날- 사천왕사, 오사카성

 오늘은 탐방의 마직막 날 조식 후 부지런히 짐을 모두 챙겼다. 처음으로 찾은 곳은 백제 사찰의 건축 양식을 보여주는 시텐노지(사천왕사)였다. 내내 맑았었는데 우리가 떠나는 줄 알고 제법 굵은 빗줄기가 내린다. 6세기 말 쇼토쿠 태자 때 건립되어 가람배치, 치미, 배흘림 기둥, 막새기와의 무늬 등에서 한반도의 영향을 받았음을 확인할 수 있으나 역시 2차 대전 당시 폭격으로 소실된 후 콘크리트 건물로 재건되었다고 한다. 이 절은 매년 11월 첫째 일요일 왕인박사 등 한반도에서 온 손님을 위한 기념하여 가장 행렬인 ‘왓소축제’도 연다고 하는데, 예정대로 라면 지난 일요일에 이 축제가 열렸을 듯 하다. 

 두 번째 행선지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영화와 몰락을 상징하는 오사카 성이었다. 임진왜란을 일으켜 한반도를 유린했던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15년에 걸쳐 만든 성곽이다. 여러 차례 소실과 복원을 반복하다 2차 세계대전 때에 폭격을 받아 폐허가 된 후 현재 건물은 오사카 시민들의 성금으로 지어졌는데 콘크리트 건물이란다. 천수각의 8층 전망대에 오르면 오사카 시내를 감상할 수 있고 내부는 역사박물관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콘크리트 건물인데다 까마귀들이 곳곳을 점령하고 있어서인지 사진으로 볼 때와는 달리 차갑고 딱딱하다는 느낌은 어쩔 수 없었다.

 오사카 시내를 뒤로 하고 바다를 메꾸어 만들었다는 오사카 간사이 공항에 조금 일찍 도착했다. 각자 집에 들고 갈 선물꾸러미들을 바리바리 싸들고 탑승한 이스타 항공 614편은 오후 6시 40분쯤 이륙하였고 8시가 조금 넘어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5박 6일간의 쉼 없는 일정이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5일간의 탐방은 선조들의 발자취를 통해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확인하고 한민족으로서의 자긍심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한편으로는 역사를 바로 보고 학생들에게 잘 전달해아겠다는 사명감으로 다가왔다. '역사에 대한 인식은 미래를 반영하는 거울' 이라고 했던가? 엄청난 피해를 감내해야했던 불행의 역사를 반복하지 않는 길은 무엇일까? 여하간 역사를 잊고 사는 민족에게 희망찬 미래는 없다는 얘기가 귓가에 맴돈다.

 탐방지에서 느꼈던 조상의 숨결을 느끼며, 이유야 어찌되었든 모국을 떠나 이국땅에서 이방인으로서 자신의 정체성과 잠재력을 잃지 않기 위해 주어진 역할을 묵묵히 해내며 힘들게 노력했을 우리 선조들의 고뇌에 찬 삶의 여정과 그 인내심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한편으로는 그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해 봐야할 일본인과 한국인의 생각의 차이, 그 간극이 얼마나 깊을지 중요한 관심사 중에 하나였는데 그 깊은 속내를 들여다 볼 수는 없었지만 최소한 그것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그것도 소득이라 할 수 있을까?

이래저래 미래의 발전적 한일 관계와 협력은 참으로 풀기 어려운 숙제인 듯 하다

 

 이젠 연수의 경험이 수업을 통해 생생하게 학생들에게 전달되는 일이 남았다. 고민하고 연구해야겠다. 선생님들의 그러한 작은 노력들이 모여 제자들의 진취적 기상을 자극하고 삶의 자세를 바르게 하는데 도움을 주기를 바래본다. 그들이 훌륭한 대한민국 미래의 구성원으로 당당하고 멋지게 성장할 수 있다면 좋겠다.

 끝으로, 적지 않은 비용을 투자해야 하는 부담과 보이지 않는 여러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뚝심 있게 지난 30여 년 간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선도적으로 실천해가는 조선일보와 신한은행, 포스코에 감사와 성원을 보낸다.

  일본답사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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