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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속의 한민족사 학술지

'역사에 대한 인식은 미래를 반영하는 거울' 한일 고대사를 제대로 알고 이를 학생들과 이웃, 후세들에게 정확히 전달해 올바른 역사관을 형성하고 세계 속에 당당한 한민족으로 우뚝 설 수 있길 기대합니다.

 


<일본 고대문화의 이해> 일본 불교문화의 이해 - 정영호
이름 :
정영호
소개:
단국대 박물관장, 석좌교수
서울대 역사과 졸업. 문학박사, 문화재위원, 국사편찬위원, 한국미술사학회장, 한국범종학회장, 백제왕인박사현 창협회장 등 역임. 현재 한국문화사학회장, 한국교원대학교 명예교수, 성림문화재연구원장, 단국대학교 석주선 기념박물관장 겸 석좌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는 『한국의 석조미술』 『고고미술 첫걸음』 『백제의 불상』 『신라석조부도』 『한국의 석탑』 『도의국사와 진전사』 등이 있으며,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우현문화상, 만해학술상을 수상했다.
E-mail :
jung2288@dankook.ac.kr

 

천자문과 논어를 전파한 왕인 박사

일본의 고대문화는 고구려, 백제, 신라의 선각자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선진 문물을 전해주면서 그 기틀이 잡혔다. 이 무렵 오사카, 나라, 교토지역은 갈대가 무성한 미개지였으며 가와치(河內) 일대는 잡목 숲으로 덮여 있었다. 넓은 평야를 개척하려면 오사카의 요도가와(淀川), 아스카와 나라의 야마토가와(大和川), 교토의 가쓰라가와(桂川) 등지에 제방을 쌓고 황무지를 개척해 논이나 밭으로 가꾸어야 하며, 특히 논농사에는 수로를 만들어야 했다. 또한 들판을 개간하는 데는 철로 만든 괭이와 쟁기, 톱 등 농기구가 대량으로 필요했으며 관개용수를 공급하기 위해서는 저수지와 용수로를 만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것은 자연적인 관개에만 의지하던 재래의 벼농사 기술보다는 질적으로 한 단계 높은 것으로서 새로운 토목과 관개사업, 제철기술 등을 종합적으로 다룰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야만 했으니 이 새 기술을 가지고 나타난 사람들이 바로 우리 조상들이었던 것이다.

천자문과 논어를 가지고 일본에 건너가 학문을 전달한 왕인박사의 업적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며, 불교 역시 우리 조상이 전해주었다는 사실이 일본 측 문헌에 잘 나타나 있다. 그리하여 한국 고대문화의 주류가 불교문화인 것처럼 일본 고대문화의 주류 또한 불교문화라 할 수 있으니, 어떤 경우는 일본이 한국보다도 더욱 성황이었음을 현재 남아 있는 여러 유적·유물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일본에 불교가 전달된 것은 '538년 백제로부터였다'는 설과 '552년에 백제로부터 불교가 전달됐다'는 두 가지 학설이 있는데 이 문제는 일본학계에서 팽팽히 맞서고 있는 학자들이 많으므로 논외로 하겠으나, 538년이든 552년이든 백제로부터 불교가 전해진 것만은 분명하다.

백제로부터 불교가 전해진 뒤 일본 각지에서는 우리 조상들에 의한 창건불사(創建佛事)가 일어나게 되었다. 쇼토쿠 태자(聖德太子)가 607년에 호류지(法隆寺)를 건립했을 때, 여기에 귀족들의 상당한 지원이 있었던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같은 때에 우리 조상들에 의해서 교토에 고류지(廣隆寺), 나라에 다이마지(當麻寺), 오사카에 시텐노지(四天王寺)가 세워진 사실은 너무나도 유명하다. 그 결과 624년에는 사찰의 수가 46사(寺)에 달했고 승려 수도 385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이 시대에 속하는 아스카시대(飛鳥時代)의 기와는 규슈(九州)의 후쿠오카(福岡)지역으로부터 나고야(名古屋)지방에까지 50여 곳에서 발견 조사되었는데 이들 사원의 대다수가 우리 조상들의 마을에 있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불교는 일본 고대문화의 근원

오늘날 오사카 야추지(野中寺)는 우리 조상들이 창건한 사찰로서 이곳에는 백제식의 목탑지와 금당지가 잘 남아 있으며, 특히 ‘다케노우치가이도(竹の內街道)’는 백제인들이 오사카의 가와치로부터 나라의 아스카지역으로 문물을 전해주었던 개척로(開拓路)로 유명하다. 그리고 후지이데라(藤井寺), 가라쿠니진자(辛國神社)도 우리의 조상을 모시고 있는 곳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오늘날 일본에 남아 있는 불교 유적과 유물 중 우리 조상들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불교 건축, 조각, 공예, 회화, 미술 등이 얼마나 많은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한국의 불교문화가 일본 땅에 심어진 자취는 당시 일본의 중심지였던 아스카, 나라, 교토, 오사카 지방뿐 아니라, 시가현(滋賀縣)의 석탑사(石塔寺)와 백제사(百濟寺), 후쿠이현(福井縣) 오바마시(小濱市)의 불국사(佛國寺) 등 일본 각지에 흩어져 있다. 예컨대 석탑사는 고대 양식의 석탑이 중심을 이루고 있어 붙여진 명칭인데 여기에는 백제식의 3층 석탑이 건립되어 있으며 전형적인 일본식 석탑과는 전혀 다른 형태를 보이고 있다. 가모군(蒲生郡)의 한적한 곳에 석탑사가 있는데 높직한 대지 위에 3층 석탑을 건립하였다. 이에 대해 일본학계에서는 “쇼토쿠 태자가 건립하였다”, 또는 “인도 아소카왕(阿育王) 팔만사천탑의 하나이다”, 혹은 “백제의 귀화인 700여명이 가모군에 살고 있어서 그들이 이곳에 고국의 양식에 따라 세웠다” 등등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그러나 이 석탑이 백제양식의 석탑임은 어렵사리 알 수 있다. 널찍한 탑구(塔區)를 마련하고 지대석 위에 탑신부를 받고 있는데, 각 층의 옥개석과 탑신석의 구성으로 보아 부여의 정림사 5층석탑과 흡사함을 느낄 수 있다. 이런 양식의 석탑은 일본에서는 전혀 찾아 볼 수가 없으며 일본에 전해지는 모든 기록이나 현지의 상황과 주민들의 증언 등을 종합해 볼 때 백제인들에 의한 백제 석탑임이 분명한 것이다.

각 사찰에서 행하는 불교행사 중 가장 성스러운 것은 4월 초파일 석가탄신일의 행사로, 관불(灌佛) 혹은 관정(灌頂)이라고 한다. 부처님 머리를 물로 정중히 적시는 일로, 본래 인도에서 국왕이 즉위하거나 태자를 책립할 때 행해진 의식이며 사대해(四大海)의 물을 머리 위에 끼얹어 축하의 뜻을 표했다고 한다. 관정을 행하는 방을 관실(灌室)이라 하며 관정을 위해 특설된 도량을 ‘관정도량(灌頂道場)’이라 하는데, 이런 행사가 곧 석가탄신일에 그 탄생하신 모습에 향수를 정중히 뿌리는 불사가 된 것이다. 한국에서는 신도들 간에 ‘관욕(灌浴)’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한국에서도 일찍부터 관불의 행사가 있었는데, 일본 측 나라시의 ‘강고지(元興寺)’ 관계서류에 백제 성왕 16년(538년)에 관불기 일습이 불상과 함께 일본에 전달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그 후 606년 강고지에서 관불의식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때 사용한 관불기가 백제로부터 전달된 것이 아니었던가 한다.

한국에서는 일찍이 승려의 묘탑으로 8각원당형의 석조부도가 건립되어 오늘에까지 이르고 있다. 일본은 흔히 ‘목탑의 나라, 목조미술의 나라’라고 일컬어지는 만큼 부도에 있어서도 목조부도가 건축되었다. 따라서 현존하는 일본의 목조 8각당불전은 그 원류가 한국임을 쉽게 알 수 있다. 그것은 한국의 석조부도 건립이 산문(山門)의 근본도량에 창건조사(創建祖師)의 묘탑에서 비롯되었던 것처럼, 일본에서도 그 사찰의 창건조사의 목상을 모시게 됨으로써 8각당불전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예컨대 호류지의 유메도노(夢殿)와 에이산지(榮山寺)의 8각당 등은 그 대표적인 예라 하겠다.

오늘날 일본에 전해진 한국 불상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쓰시마(對馬島)와 같은 좁은 지역에도 한국의 불상이 백 수십 구가 되며 일본의 불상조각을 연구하는 학자는 1200점의 한국불상 목록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우선 일본의 국보 1호로 지정 보존되고 있는 고류지의 목조반가사유상은 일본학자가 고(古)신라시대에 조성되어 일본으로 전해졌다고 발설하였고 기록으로도 이러한 사실을 밝혀 놓았다. 그리고 일본 각지에 남아 있는 우리 고대의 불상 가운데 쓰시마 조린지(淨林寺)의 금동반가상, 나가노현(長野縣) 간쇼인(觀松院)의 금동반가사유상, 개인들이 봉안하고 있는 금동반가사유상과 금동불 등 보살상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도쿄 국립박물관 별실에 진열·공개되어 있는 호류지 헌납보물 중 금동삼존상을 비롯한 몇 구의 불상은 일본학자들이 백제의 불상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들이다.

 

삼국의 영향을 받은 일본 불교사상

아스카시에 위치한 아스카지(飛鳥寺) 금동대불에 대해서는 사찰 측에서 고구려의 혜자(惠慈)스님과 백제의 혜총(惠聰)스님이 최초로 이곳에 와서 사찰을 경영했고 불상도 당시 조성했다고 하니, 아스카지역의 불교문화는 백제만이 아니었던 것이 증명된다. 이밖에 석불과 마애불상에 있어서도 우리들의 조상, 아니면 그 후예들에 의하여 이루어진 불·보살상들이 여러 곳에 남아 있어 일본사람들의 찬사를 받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오늘날 일본에 남아 있는 불교 유적·유물들은 우리의 것이 직접 일본으로 전달된 것도 많지만, 한편으로는 우리 조상들의 기술에 의해 만들어져 고구려, 백제, 신라 혹은 통일신라시대의 특징을 보이고 있는 것들도 많다. 한 가지 예로, 금속공예를 대표하는 범종의 경우 통일신라, 고려, 조선시대의 범종이 일본에 건너간 경우가 70여 구나 되며 그 영향 아래 만들어진 한국적인 종도 상당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불교사상에 있어서도 일본은 삼국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일본 삼론종(三論宗)의 혜관은 고구려 승려였고, 법문의 대가로 추앙을 받고 있는 도장은 백제의 스님이었다. 승관제(僧官制)의 실시 후 백제의 관륵스님이 초대 승정(僧正)으로 취임했고, 초대 승도(僧都)에는 고구려의 덕적 스님이 취임했으며, 2대 승정 또한 고구려의 혜관 스님이었다.

이처럼 일본의 불교는 초기 전파 과정뿐 아니라, 교학의 발전, 승관제도의 수립 등 모든 면에서 우리 승려들의 활동에 의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쇼토쿠 태자가 고구려의 혜자 스님으로부터 불교를 학습한 것에서 볼 수 있듯, 삼국에서 전래된 불교사상은 예술뿐 아니라 일본 고대국가 성립의 정신적 이념이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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