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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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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토미의 권력의 상징인 오사카성大阪城

임진왜란을 일으켜 한반도를 유린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가난한 하급무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 무렵에는 일본에도 엄격한 신분제도가 있어서 미천한 집안에서 태어난 자는 여간해서 입신출세가 어려웠다. 도요토미는 윗사람을 잘 만난 행운아 중의 행운아였다. 나이가 두 살 많았던 상전 오다노부나가(織田信長)는 이름난 용장(勇將)이었다. 성격이 잔인하고 불같았지만, 한편으로는 세상의 상식을 뒤엎는 파격적인 면모를 지닌 리버럴리스트였다. 그는 출신성분이 아무리 형편없어도 당사자만 똑똑하면 과감하게 발탁하여 중용했다. 아마 오다가 없었더라면 도요토미라는 이름도 결코 역사에 남지 않았으리라.

 

주군(主君)인 오다가 1582년 천하통일을 눈앞에 두고 암살당한 뒤 권력은 거의 도요토미의 손아귀에 쥐어졌다. 그로부터 도요토미의 빗나간 행각이 벌어진다. 워낙 어렵게 자라난 과거의 기억이 억울했던 탓인지 최고 권력자가 되자 극도의 사치를 부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절과 신사를 위시하여 가는 곳마다 화려한 건축물이 세워졌다. 외양만 화려한 것이 아니라 건축물 내부도 멋진 그림과 조각으로 채웠다. 그로 인해 일본미술사에서는 이 시기를 ‘아즈치 모모야마(安土桃山) 시대’라고 구분하여 부른다. 도요토미가 자신의 거처로 지은 오사카성도 마찬가지였다. 이시야마 혼간지(石山本願寺)로 불린 절터에 1583년부터 축성하기 시작, 본채는 1년 6개월 만에 완공했다. 나머지는 그가 죽기까지 15년에 걸쳐 서서히 지어졌다.

 

일본에서 성 안에 천수각(天守閣)을 세운 것은 오다 노부나가의 본거지였던 아즈치성(安土城)이 처음이었다. 도요토미는 오사카성에 두번째 천수각을 지으며 아즈치성의 그것을 능가하고 싶어서 5층 누각 전체를 금과 은으로 도배하다시피 했다. 일종의 콤플렉스에 기인한 보상심리로 여겨지는데, 심지어는 화장실조차 온통 순금으로 장식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도요토미의 영화와 몰락을 상징하는 성

 


그러나 졸부가 죽으면 일장춘몽도 사라지는 법이던가! 조선 침략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도요토미가 죽은 뒤 1614년 겨울과 이듬해 여름에 벌어진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의 막판 대공세로 오사카성은 폐허로 변하고 말았다. 이에야스에게 패한 도요토미의 아들 히데요리는 이 성에서 자결로 최후를 장식한다.

 

그 후 도쿠가와 막부의 직할령으로 바뀐 오사카성은 3대 쇼군(將軍) 도쿠가와 이에미츠(德川家光, 1604~1651년) 시절 각 지역 영주들에게 공사를 할당하여 복원했다. 이때 외부에서 보기에 5층(내부는 6층)인 높이 58.5m의 천수각도 다시 세워졌다. 거대한 화강암으로 쌓은 성 외곽의 석축은 영주들의 충성심 경쟁으로 각 지역에서 잘 빠진 돌만 골라 옮겨온 것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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