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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소개

고대 선조들의 발자취를 따라 움직이면서 진행하는 현장강의 등이 준비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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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의 문화의 종합한 호류지 法隆寺

호류지(法隆寺)는 일본이 자랑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목조 건축물입니다. 중국과 한반도의 불교 건축과 예술이 일본에 건너가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동아시아 미술의 보고(寶庫)’로도 불립니다. 특히 고구려ㆍ백제ㆍ신라 등 삼국시대 문화를 종합했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일본이 한반도의 직접적인 문화적 영향권 하에 있었음을 여러 건축물과 불상, 그림 등이 웅변하고 있습니다. “사라져버린 백제 목조 건축의 실상을 알기 위해선 호류지를 봐야 한다”고 말할 정도입니다. 호류지는 금당과 5중탑이 있는 ‘서원(西院)’과 유메도노(夢殿)를 중심으로 한 ‘동원(東院)’등 2개의 가람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원래부터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서원은 쇼토쿠 태자가 세운 사찰, 곧 호류지를 가리키며, 동원은 쇼토쿠 태자를 모신 사찰, 즉 조구오인(上宮王院)으로 나라시대 창건됐습니다. 헤이안시대에 이르러 두 사찰은 하나로 합쳐졌다고 전해집니다. 이곳에는 현재 국보가 19점, 중요문화재가 36점이나 있습니다. 1993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습니다.

 


 스이코(推古) 천황은 15년(607)에 쇼토쿠 태자는 거처였던 이카루가미야(斑鳩宮) 서쪽에 개인 사찰로 호류지를 건립했습니다. 이때 창건된 호류지가 이른바 ‘약초(若草) 가람’입니다. 이 절은 670년 벼락을 맞아 전소됐다고 <니혼쇼키(日本書紀)>는 접합니다. 그 뒤 북서쪽에 새로운 절을 조상했고, 711년에는 금당과 5중탑 등 주요 건축물이 완성됐습니다.
 이것이 지금의 호류지 서원 가람입니다. 다시 지은 호류지 가람은 금당과 탑의 배치를 남북에서 동서로 바꾸어놓았습니다. 동원은 739년 교신(行信) 스님이 옛 이카루가미야 자리에 조성한 것으로 유메도노를 중심으로 전법당(傳法堂)ㆍ회전(繪殿)ㆍ사리전(舍利殿) 등이 들어서 있습니다.

담징이 그린 것으로 알려진 금당벽화

 호류지의 금당(金堂)은 벽화로 유명합니다. 특히 고구려의 담징(曇徵)이 벽화를 그림 것으로 전해지고 있어 우리에게도 친숙합니다. 이 벽화들은 1949년 수리 중에 발생한 화재로 내진(內陣) 위쪽에 그려진 비천상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소실되어 지금은 사진을 기초로 재현한 모사품을 통해 원작의 아름다움을 추측해볼 수밖에 없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금당은 사방에 나 있는 문을 제외하면 기둥과 기둥 사이 벽면(外陣)이 12개인데 벽화는 이 벽면에 그려졌습니다. 이 중 가장 유명한 그림이 ‘아미타정토도(阿彌陀淨土圖)’입니다, 중앙에 본존인 좌상의 아미타여래를, 그 좌우에 입상의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표현하고, 그 나머지 여백에 화불(化佛)들을 그려 넣었습니다. 아미타여래의 머리 위쪽에는 화려한 천개(天蓋)를 표현했습니다. 구도는 철저한 좌우대칭입니다. 어깨는 넓고 허리는 가늘며, 둥근 얼굴, 가늘고 긴 눈, 뚜렷한 입술 등으로 볼 때 당대(唐代)나 통일 신라기의 불상 조각을 대하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의습의 표현에서는 적극적인 음영법이 구사되어 색채감각과 함께 서역적인 요소를 드러냅니다.

 


 이런 양식은 한반도를 통해 이식됐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당시 일본의 항해술로는 당과 교통에 어려움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갈색ㆍ초록ㆍ노랑 등을 주조로 한 중앙아시아적 채색법과 철선묘를 위주로 한 묘법 등은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자주 엿볼 수 있는 요소들입니다. 또 벽화의 보살들이 하고 있는 목걸이는 기본적으로 백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것들과 형식이 같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목걸이는 당시 백제에 영향을 미쳤던 고구려에서도 사용됐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결론적으로, 금당벽화는 현재로선 고구려 담징의 작품이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호류지가 조성될 즈음인 7세기 초에는 다카마쓰 고분벽화의 예에서 보듯 고구려계 회화의 영향력이 백제계 화풍을 누르고 일본을 지배했음을 보여줍니다.

일본의 자랑 백제관음

 호류지에는 아스카ㆍ나라 시대의 불상ㆍ그림 등 다양한 명품들이 전시되어 있지만 가장 큰 감동을 주는 전시물은 무엇보다도 구다라(백제)관음입니다. 2m가 넘는 크기의 이 목조 관음상은 얼굴에 머금은 온화한 자색으로 인해 삼국시대의 기품 있는 예술전통을 곧바로 떠올리게 합니다. 머리에 드리우고 있는 투조보관(透彫寶冠)과 양옆의 수식(垂飾)에서부터 두 발을 딛고 있는 연화대에 이르기까지 7세기 초 백제 장인의 솜씨가 확연합니다. 부드러운 얼굴과 눈썹의 선, 배를 앞으로 약간 내민 듯한 유연한 자세, 백제 마애불상에서 볼 수 있는 살포시 머금은 ‘백제의 미소’는 이 관음상에 왜 구다라(백제)라는 명칭이 붙었는지 고개를 끄덕이게 합니다.

쇼토쿠 태자를 기려 만든 구세관음

 서원(西院)을 넘어 동원(東院)으로 들어서면 쇼토쿠 태자의 덕을 기릴 목적으로 739년에 건립한 유메도노(夢殿)가 눈에 들어옵니다. 이 안에 비불(秘彿)인 구세관음(救世觀音)이 안치되어 있으며, 1년에 두 번, 봄과 가을의 정해진 시기 외에는 공개하지 않습니다. 백제관음과 함께 일본이 세계에 자랑하는 이 구세관음 또한 백제의 작품이라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제기되어 있습니다. 일본의 고대불교 관련 기록과 호류지 고문서에 따르면, 구세관음은 백제 위덕왕이 아버지인 성왕을 추모해 만들어 왜의 왕실에 보냈다는 것입니다. 당시 쇼토쿠 태자는 성왕이 환생한 인물로 통했다고 합니다. 주지하다시피 성왕은 일본에 불교를 전파한 왕입니다.

고구려 혹은 백제의 영향 뚜렷한 옥충주자

 삼국시대 미술의 일본 전파와 관련해 중요시되는 보물 중 하나가 호류지에 소장되어 있는 옥충주자(玉蟲廚子)입니다. 주자(廚子)란 불상을 모셔두는 방이나 집을 말하는 것으로 불감(佛龕)이라고도 합니다. 옥충(玉蟲)이란 비단벌레를 말하는 것으로 주자의 상부인궁전부(宮殿部) 주변의 모서리를 감싸고 있는 투조(透彫)의 금동제 테 밑에 비단벌레 날개를 깔아 장식했습니다. 상부의 궁전부와 중간의 수미좌(須彌座), 하부의 기단 등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궁전부의 법당은 실제로 20배쯤 확대하면 금당과 비슷해지지 않을까 느낌을 갖게 합니다.

 

 

 옥충주자는 우리나라 삼국시대의 회화ㆍ조각ㆍ공예ㆍ건축ㆍ미술의 영향이 투영되어 있어 그 의미가 큽니다. 삼국 중에서도 백제의 영향을 받았다는 설과 고구려의 영향이 더 크다는 주장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백제설은 옥충주자의 건축양식에 근거를 두고 있는데, 특히 궁전부의 겹지붕이 백제의 산수문전에 보이는 사찰 건물의 그것과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또 아랫부분 수미좌 각주(角柱)를 장식한 금동 투조 장식이 백제 능산리 고분에서 출토된 왕관중심식(王冠中心飾)과 유사하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합니다.
 한편 옥충주자의 수미좌 4면과 궁전부 4비(扉, 문짝)에 그려진 불교적 내용의 그림들은 고구려의 영향을 받았음을 강력히 시사합니다. 예컨대, 수미좌 앞면 ‘공양도(供養圖)’에 그려진 비구(比丘)와 비운(飛雲) 등은 고구려 진파리 1호분이나 강서대묘를 비롯한 고구려 후기 고분벽화를 빼닮았습니다. 궁전부에 그려진 천왕성과 보살상들을 보면, 그 자세나 의습, 천 자락의 처리, 테를 두른 두광(頭光), 대좌의 연판문 등이 고구려의 금동인왕상과 너무나 비슷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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