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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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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의 목조 건축물이 있는 도다이지(東大寺)

도다이지는 단일 규모로는 세계에서 가장 큰 목조 건축물입니다. 그 안에는 역시 세계에서 가장 큰 청동 대불(毘盧遮那佛)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무게만 425t, 높이가 16m나 되는 거대 불상 앞에 서면 그 위용에 압도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일본 관광 최우선 코스로 꼽히는 도다이지는 세계 각국에서 이 대불을 구경하러 온 사람들로 1년 내내 북적입니다. 수학여행 철이면 전국에서 몰려든 일본 학생들로 혼잡을 이루는 곳이기도 합니다.

 

 

8세기 들어 일본 열도는 율령체제가 성립되고 천황제가 확립됐습니다. 하지만 지배계급 내부에서 유력한 호족들 간의 투쟁이 격화되어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당시 도호쿠(東北)지방은 아직 개척이 진행중이었으며 그 외에도 각 세력이 지방에 흩어져서 독자적인 권한을 행사하고 있었기 때문에 지방 세력들의 반발을 무마해야 했습니다. 더구나 백제ㆍ고구려 유민들의 집단 이주로 중앙지배는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흉작이 거듭되고 질병이 창궐했습니다. 위기에 처한 신흥국가 일본은 국가적으로 민심을 수습해야 했고, 왕실의 존엄성도 높여야 했습니다. 특히 적대관계인 신라에는 국력을 과시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청동대불의 완성은 신흥 일본국의 상징 쇼무(聖武) 천황이 741년 칙령을 내려 토다이지 조성을 지시한 것은 이 때문입니다. 쇼무는 중앙집권 체제의 강화와 이데올로기의 통일을 위해 전국에 사찰을 지었고, 토다이지는 천황가의 우지테라(氏寺)로서 전국에 흩어져 있는 국분사(国分寺)의 총본산이었습니다. 도다이지와 대불의 완성은 신흥 일본국의 탄생을 대내외에 알리는 의미 깊은 사업이었습니다.

 

 

 752년 4월 9일 완성된 도다이지 대불 앞에는 1만여 명이 참례를 위해 늘어섰습니다. 개안공양(開眼供養)에 참석하기 위해 각국에서 사신들이 파견됐습니다. 개안공양이란 불상의 눈을 그려 넣어 혼을 집어넣는 의식으로, 이 해는 일본에 불교가 전해진지 꼭 200년이 되는 기념비적인 해였습니다. 신라는 700명에 달하는 대규모 사절단을 파견했고, 발해 역시 3척의 배와 함께 사신을 파견했습니다. 당(唐)과 인도 등에서도 축하사절을 보내는 등 이날 개안공양은 가히 국제적인 축제였습니다.

한반도계가 토다이지 창건에 결정적 역할

도다이지 창건의 대역사를 추진하고 완성하는 데는 한반도에서 건너온 사람들의 힘이 절대적이었습니다. 도다이지와 대불주조의 발원, 설계와 제작을 지휘한 양변(良弁) 스님은 오우미(近江, 현재의 시가 현) 지방에 정착한 백제계 씨족의 후손이었습니다. 그들 일족은 기꺼이 절 지을 터전을 제공했습니다. 일본 조정은 절의 경내에 신사를 지어 감사의 뜻을 표시했습니다. 현재에는 규모가 크게 위축되긴 했지만 지금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가라쿠니(辛國, 원래는 韓國) 신사가 그것입니다. 양변스님은 왕인박사의 후손으로 알려진 스님 교키(行基)에게 협력을 요청하게 됩니다. 교키는 일본 민중신앙의 창시자입니다. 처음엔 절 건설에 반대했으나 태도를 바꿔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신토(神道)와 불교를 화합한 교키 스님의 전초작업이 없었다면 대불 주조는 불가능했을 겁입니다. 대불 조성에 드는 노역과 재정을 민중들이 견뎌내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키 스님은 쇼무 천황의 신임을 얻어 대승정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신라장적이 들어 있는 황실 유물창고 쇼소인

 

 

 대불전(금당)뒤편 강당 터에서 다시 서쪽으로 가면 일본 황실의 유물창고인 쇼소인(正倉院)이 있습니다. 756년 쇼무 천황이 죽자 왕비가 그의 명복을 빌기 휘해 숟가락을 비롯해 칼ㆍ거울ㆍ무기ㆍ목칠공예품ㆍ악기 등 애장품을 49재에 맞춰 헌납한 것에서 시작된 쇼소인은 한국ㆍ중국ㆍ인도의 고대유물을 포함해 소장품만 9000여 점에 달해 일본이 세계 제일의 보고(寶庫)라고 자랑하는 곳입니다. 그 가운데는 신라금(金)ㆍ신라먹ㆍ신라종 등 신라왕실에서 시주한 물화(物貨)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는데, 755년경의 것으로 추정되는 ‘신라장적(新羅帳籍)’은 신라 농촌사회의 구조와 토지제도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됩니다. 평상시에는 공개하지 않고 매년 10월 하순부터 11월 초순에 걸쳐 나라 국립박물관에서 유물을 특별 전시합니다. 대불은 헤이안 시대 말기인 1180년과 전국시대인 1567년, 두 차례 불에 탄 이후 일본식으로 변모하기 시작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지금에 와서는 전혀 우리의 감각이 느껴지지 않지만 경내 구석구석을 찾아보면 상당한 잔형을 남기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의 토다이지 건물 또한 재건축된 것으로 원래 크기에서 3분의 1로 줄어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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