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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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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와의 연결 고리 후나야마 船山 고분

 

 후쿠오카(福岡)에서 구마모토(熊本)로 가는 길목에 있는 후나야마(船山) 고분은 전방후원분(前方後圓墳)입니다. 지금부터 140여 년 전인 1873년 1월 4일 이 일대의 땅 주인이 꿈에 후나야마 꼭대기를 파 보라는 계시를 받고 발굴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이상한 것은 발굴 즉시 유물에 대한 보고서가 나오지 않은 점입니다. 메이지(明治) 후반에야 연구 보고가 나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고분의 크기는 정장 46m, 후원(後園)부 직경 26m, 높이 7.9m, 전방(前方) 폭 23m, 높이 6m로 지금 보는 것보다는 훨씬 규모가 컸습니다. 고분에서는 집 모양의 석관이 나왔습니다. 유명한 화산인 아소(阿蘇) 용암재로 만든 조합식 관 뚜껑이 있고, 석관 안은 단청이 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석관 내부의 길이는 2.2m, 폭이 1.1m, 천장 높이가 1.45m이며 관 뚜껑이 좌우로 열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뒤늦게 밝혀진 이 고분 출토 유물은 모두 92건이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청동거울(6개), 구슬(7개), 관옥(管玉 14개), 유리옥(90여개), 갑옷(3벌), 칼(7개), 창신(4개), 철촉금동제 관모(1개), 금동 제관(3개분), 금동제 신발 말재갈(2조), 금귀고리(2쌍), 금팔찌(1쌍), 도자기잔(1조) 등이었습니다. 금동제 관모와 금동제 관 등 놀라운 유물과 함께, 청동거울과 철제 칼에는 글자까지 새겨져 있었습니다. 대단한 발굴ㆍ발견임이 분명하지만 일제(日帝)는 이런 사실을 즉각 공표하지 않고 학자들의 연구를 거쳐 내놓은 것입니다.

무령왕릉 유물과 비슷한 부장품 대량 출토

 그런데 청동 거울은 우리나라 공주(公州) 무령(武寧)왕릉에서 출토된 것과 비슷한 것들입니다. 이 거울이 후쿠오카(福岡) 등 개척자들이 상륙한 지점을 따라 분포되어 있는 것도 관심거리입니다. 그런가 하면 아름답기 그지없는 금귀고리는 우리나라 삼국 초기 가야지역에서 출토된 것들과 똑같습니다.
 일본 학자들은 이 고분 출토 유물 가운데 자랑할 만한 것으로 이들 금귀고리를 들고 있습니다. 세공기술이 정교하고 아름다우며, 색유리의 구슬에는 상감까지 했습니다. 금동신발은 전면에 거북껍데기 무늬를 연속으로 눌러 찍고 그 사이에는 금줄로 보요(步搖)와 유리구슬을 달았습니다. 밑바닥에는 운동선수의 스파이크처럼 4개의 침이 있어 걸을 때 미끄러지지 않도록 한 것 같습니다. 이 금동신발은 실용품이 아닌 의례용으로 보입니다.

백제 양식과 비슷한 금동관도 나와

 금동관은 모두 3개가 나왔습니다. 하나는 관모로 용과 화염상 무늬가 투조(透彫)되어 있고 뒷면에는 사행상반구형(蛇行狀半球形)의 장식 금구(金具)가 붙어 있습니다. 다른 두개는 천관(天冠)으로 그 중 하나에는 보요가 여러 개 달려 있고 머리띠 무늬에 마름모 모양의 무늬를 연속해서 눌러 찍었습니다. 이들 금신발이나 금관은 우리나라 공주 무령왕릉이나 익산(益山) 고분에서 나온 유물과 크기만 다를 뿐 모양은 똑같습니다.
 이 고분에서는 14개의 큰 칼이 나왔습니다. 이 가운데 은 상감으로 글자를 새겨 넣은 칼이 발견됐습니다. 은 상감 대도는 손잡이가 없으나 길이는 85cm나 됩니다. 12개의 국화무늬와 말이 상감되어 있고 칼을 만든 사람(刀工)의 이름, 글을 쓴 이의 이름까지 새겨져 있는 명품인 것입니다. 후나야마 고분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비전문가들의 눈으로 봐도 고대 한반도에서 건너갔거나, 열도로 이주한 개척자들이 만든 것임을 의심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 것과 닮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 유물은 일본 국보로 지정되어 실물은 도쿄박물관에 있습니다. 이곳에 있는 것은 똑같은 모양으로 만든 모조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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