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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속의 한민족사 탐방
: 김현영 : 2018-11-14 09:5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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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속 한민족사 탐방

 

                  거제상문고등학교 교사 김현영

  “작은 나를 다시 돌아보며”
    사람들의 마음이 더 공허하고 더 삐뚠 것은 무엇일까? 물질적 풍요 속에서도 행복은커녕 불평과 불만이 마음에 가득하다. 삶이 좋아지는 것만큼만 욕구가 자라면 되는데, 욕구가 빨리 커지고 이전보다 더 잘살아도 불평이 늘어난다. 하지만 나무는 사람처럼 움켜쥐려 하지 않는다. 차가운 겨울을 코앞에 두고도 자신의 모든 것을 자연에게 돌려주고 빈손으로 겨울을 맞는다. 시린 겨울 동안 모진 풍상을 견뎌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그냥 다 내려놓는다. 그리고 온몸으로 겨울을 인내하고 화창한 봄날에 다시금 깨어나 우리에게 푸르름을 선사한다. 과거, 현재,미래의 역사에서 증명하듯 물질과 정신이 혼돈되어 숱한 희생양이 되는 경우를 보아왔다. 우리의 문화가 문(文)의 문화로 자부한다면 일본은 당연히 무(武)가 지배했던 나라다.  “선조들이 밟았던 문화전달 경로를 따라 이동하며 찬란한 한민족 문화의 전달과정을 일본현지에서 직접 확인하고 국내 최고 권위의 역사전문가의 생생한 현장강의를 통해 한일관계를 새롭게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역사탐방 프로그램”을 안내를 받았다. 과거 역사의 아픔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면 분명히 우리가 가야하는 지향처을 바로 세워야한다고 본다. 물질이 우선시 되고 정신을  잃어버린 민족만큼 주체성 없는 상황은 또 다시 역사의 교훈을 되새기게 한다. 과거 암울한 역사를 간직하고자 하는 후손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화려함보다는 소박함을 택하는 다소 조용하고 얌전한 일본인들을 보면서 우리가 미래에 대비해야 할 준비는 무엇일까?
  오랫동안 가보고 싶었던 일본역사탐방에 운 좋게도 첫 번째 신청에 선발되었다. 부푼 기대감에 이런 저런 자료를 살펴보고 새벽버스를 타고 인천공항을 향했다. 역사 탐방은 새로운 의미로 다가서고 윤리교사로 막연했던 역사적 증언과 유물, 유적을 직접 살펴보는 계기로 삼았다.


첫째 날


  첫째 날, 사전 강의를 듣고 특히 손승철 교수님의 강연 중 유홍준 선생님의 “역사는 유적과 유물을 낳고, 유적과 유물은 역사를 증언한다.”는 말씀이 가슴에 와 닿았다. 그리고 ‘나는 일본을 어떻게 만날 것인가?’과제를 안고, 5시간 연속된 강의로 피로가 풀리지 않는 상태지만  한일관계의 현재와 미래를 진단하는 중요한 자리인 만큼 감내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둘째 날


  5일 아침 인천공항을 떠나 첫 답사지로 향했다. 다자이후에 들려 백제 식 산성이 어우러져 자연경관과 더불어 평온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그 당시 겪을 백제유민들의 모습도 잠시 스쳐갔다. 고향에 대한 향수심이 얼마나 간절하게 다가왔는지 뼈저리게 몸에 절로 풍겨나는 것 같다.

  이어, 후나야마 고분에 도착하였다. 이 무덤은 전방후원분으로 일본 고대고분의 고유한 양식을 띤다. 눈여겨볼만한 것은 이곳에서 나온 유물이 백제 무령왕릉에서 나온 유물과 거의 일치한다는 사실이다. 백제문화의 일본전파를 알 수 있는 가장 눈여겨 볼만한 장소였다.

 


 
셋째 날


  이삼평 도예지를 방문하였다. 이삼평 14대 후손을 만난 것이 기쁘지만 기대와는 달리 처한 여건과 환경이 가슴 시리게 아파왔다. 마음에서 우러나는 도공의 피나는 열정이 고국 잃은 서러움에 한을 담고 작품을 제작하지는 않았을까? 지나가는 철마 속에 그나마 우리 핏줄이라 댕기는 느낌과 후손들은 자유롭게 예술을 승화시켜 더욱 좋은 작품을 완성했으면 좋겠다는 느낌은 민족애 일까?

  다음으로 나고야성터를 갔다. 시간 관계상 성터는 멀리서만 보고 박물관만 둘러본 것이 좀 아쉬웠다. 직접 성터에 가서 멀리 바다를 보면서 당시 상황과 기분을 느껴보고 싶었다.

  오후의 장소로 조선통신사의 글이 보관되어있는 아카마 신궁과 청일전쟁 후 이토 히로부미와 리홍장이 시모노세끼 조약을 체결한 청일 강화기념관을 가 보았다.
  저녁엔 시모노세키에서 훼리호를 타고 출발해 세키내해를 다음날 아침까지 가서 오사카항에 도착했다.


넷째 날


   간밤에 배안이 불편하여 잠을 설쳤더니 좀 피곤하였다.
오전에 나라의 세계최대 목조건축물이라는 동대사를 보러갔다. 대불전 안에는 세계최대의 청동대불이 있었다. 뒷 편에 신라 장적이 발견된 정창원을 가보고 싶었으나 시간관계상 보지 못했다. 어차피 가도 안의 유물은 일본에서도 일 년에 한번 11월 공개시기 외에는 볼 수 없다고 하니 아쉬움을 접기로 했다. 오후엔 호류지에 갔다. 여기엔 일본 최고의 목조건축물인 5층 목탑과 금당이 인상적이었다. 금당 안에 담징이 그렸다는 벽화가 있었으나 현재는 불타고 일부 만 남아있다고 한다. 담징이 그렸다고 알려져 있으나 시기적으로 맞지 않다고 한다. 특이한건 지붕아래 뻗어 있는 부제가 고대 목조건축양식인 하향식 건축 구조라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엔
남아있지 않다고 한다. 또한 경내에서 일본의 자랑거리인 백제관음과 고구려나 백제의 영향이 뚜렷한 옥충주자도 보았다. 오후 두 번째 장소로 다카마쓰고분에 가서 교과서에도 나오는 벽화를 보았다. 모사본이지만 신기했고 무엇보다 고구려 굴식돌방무덤처럼 사신도가 그려져 있는게 더 신기하고 놀라웠다.


다섯째 날


  교토의 교류지에 갔다. 여기는 일본 국보 1호라는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 있는 곳이다. 경내에서 정숙을 요구하여 우리는 경건한 마음으로 엄숙하게 관람하였다. 불상의 미소에 주목했다. 나의 위치와 자세에 따랄 미소의 느낌이 달랐다. 오묘하기도 하고 다정하기도 하며 뭔가 모를 은은함이 배어 나왔다. 종교의 신비함과 대승불교의 매력이 그 불상  안에 담겨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후 두 번째 장소로 니조성에 갔다. 이 곳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일본 왕이 있는 교토를 방문할 때 머물던 장소라고 한다. 건축양식과 건물 내의 그림도 좋다고 하지만 일본식 정원이 더 눈에 들어왔다. 인공정원의 아름다움이 모조리 농축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점심 먹기 전에 아라시야마 산책을 했는데 대나무 숲이 정말 보기 좋았다.
점심 먹고 오사카로 돌아와 오후 5시부터 7시까지 오사카 도톰부리에서 자유시간을 주었다, 우리 일행은 주로 쇼핑을 했다. 6호차 가이드가 일본에서 유명하다는 상품위주로 샀다.


여섯째 날


  마지막 날, 짐을 싸서 호텔을 출발하여 도요토미히데요시가 지었다는 오사카성에 갔다. 인상 깊었던 것은 성도 크지만 해자가 둘이라는 것과 외 해자의 크기였다. 또한 성내 관람 코스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생애를 잘 알 수 있도록 영상물로 흥미롭게 구성되었다는 것이다.
성주변이 공원으로 꾸며져 경관이 아름다웠고 산책하거나 조깅하는 시민의 모습이 보기 좋았고 부럽기도 하였다. 문화적 체험이 곧 민족애이고 뿌리의식을 심어준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6 일간의 긴 여정을 끝내고 일본 속 한민족사 탐방을 마쳤다,
  끝으로 이번 여행을 통해 그 동안 궁금했던 일본사를 좀 더 깊이 있게 이해하는 계기가 되어 좋았다. 또한 6호 자 가이드의 끊임없는 일본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야기에 넋을 잃었다. 가이드 말 중에 일본인은 일본인답게 행동한다는 것이 인상 깊었고 배울 점이라고 생각했다. 더불어 교수님 세분이 동행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고 질문할 수 있어서 좋았다. 마지막으로 함께한 세 명의 여행 메이트 들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하며 행복한 나날이었습니다. 모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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